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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연 방방곡곡 문화공감 사업 이미지음악극 '파도의 生'

한문연 방방곡곡 문화공감 사업 이미지음악극 '파도의 生'

한문연 방방곡곡 문화공감 사업 이미지음악극 '파도의 生'

일자
2021.06.12 ~ 2021.06.12
시간
17:00
장소
문의
064-710-7643

❍ 공 연 명 : 한문연 방방곡곡 문화공감 사업 ‘이미지 음악극 「파도의 生」’ ❍ 공연일시: 2021. 6. 12.(토), 17:00 ❍ 출 연 자: 제주팝스오케스트라 ❍ 공연시간: 100분 ■ 프로그램 내용 1 사업목적 ○ 해녀문화 가치의 재발견과 확산. - 제주지역의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해녀문화를 소재로 대중성과 예술성을 갖춘 제주만의 문화예술상품을 개발하여 해녀문화의 세계성을 널리 알리고 문화관광지로서의 제주의 이미지를 제고한다. 2. 기획의도 한 여인의 일생에 제주의 아픈 근·현대사가 녹아 있다. 그녀의 이름은 제주 해녀 ‘양의헌’. 제주 동복리에서 태어나 일본 오사카에서 숨을 거두기까지 두 번의 결혼과 이별, 딸은 제주에 아들은 이북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파란만장한 삶의 주인공이다. 모질고 고된 그 녀의 삶을 통해 제주 해녀의 生과 제주의 해녀 문화를 말한다. 3. 구성 (총 10개 장면으로 구성) # 01장 바다소녀 가늘게 눈을 떠보니 아침 햇살에 물결이 일렁인다. 여섯 살 여자 아이, 양의헌의 눈에 비친 제주 바다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아이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매일 같이 바다로 출근하고 바다에서 노을을 맞았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무료함을 달래고 어머니의 숨비 소리에 잠이 들곤 했다. 아이의 유년시절과 놀아준 것은 언제나 바다였다. # 02장 애기상군 바다 가까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자연스레 물질을 배웠다. 갯바위를 뒤집으면 성게와 보말이 한 가득, 물속엔 씨알 굵은 소라와 미역이 풍성했다. 그야말로 비옥한 바다 밭이었다. 그 안에서 또래의 소녀들은 고픈 배도 채우고, 물질도 하며 함께 커갔다. 어릴 적부터 기량이 좋은 양의헌의 망사리는 언제나 부풀었다. 해녀 삼촌들은 그런 소녀들 가리켜 ‘애기상군’이라 불렀다. 동네 모든 해녀가 바다로 나왔다. 해마다 음력 3월이면 바다의 풍년과 안전을 비는 ‘잠수굿’이 펼쳐진다. 해녀들이 바닷가를 돌며 좁쌀을 뿌리기 시작한다 . 바다의 풍년을 위해 씨를 뿌린다 하여 ‘씨드림’이라 불리는 의식이다. 이어서 한지에 고이 담은 쌀을 바닷속 용왕님께 보내는 ‘지드림’을 끝으로 잠수굿은 마무리된다. 이날 애기해녀들은 굿판을 지켜보며 해녀의 삶 속으로 한 발짝 더 들어갔다. # 03장 살암시민 살아진다 1930년, 제주 바다는 뜨거웠다. 일본의 잦은 수탈로 해녀들의 원성은 높아만 갔다 해녀항쟁이 일어난 것이다. 그 즈음 제주의 많은 해녀들이 일본으로 강제징용 물질을 떠나야했다. 제주 해녀들이 일본으로 출가물질 떠난 것은 19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됐다. 가까이는 육지부로, 멀리 평안도와 일본 등지를 떠돌며 물질을 이어갔다. 먹고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양의헌도 그렇게 현해탄을 건너간 해녀들 가운데 한 명이다. # 04장 1945년의 여름 파도를 밀며 숨비소리가 올라온다. 1945년 8월 15일, 마침내 찾아온 광복! 해방의 기쁨과 감격을 느끼며 해녀들도 모처럼 평화로운 바다를 누빈다. 이 때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해녀 양의헌이다. “복순이 어멍~ 올라와서?” “예게~ 나 여기 잇수다, 영철이 어멍은?” “나도 올라와신디양~ 호쏠 더 물에 있당 나오게 마씀” 바다에 동동 떠 있는 태왁 너머로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해녀들... 그것은 서로의 안전을 확인하는 인사이면서, 물속에서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그렇게 함께 바다밭을 일구는 동료이며, 바다 인생의 동반자인 제주의 해녀들... 그들은 서로를 가리켜 ‘물벗’이라 부른다. 턱으로 모인 해녀들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동료 해녀의 사고 소식이다. 칠성판을 등에 지고 혼백상자를 머리에 이고 물에 든다는 해녀들... 바다 위에서 삶과 죽음은 한 순간이라는 뜻이다. 해녀들이 동료의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극진히 굿을 올린다. 크고 깊은 울림이 망자의 영혼을 달래며 바다 멀리 퍼져나간다. # 05장 4.3과 밀항 다시 해녀들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보통의 날처럼 바다밭과 육지밭을 오가며 분주하게 삶을 이어갔다. 그러나 평범한 날은 오래가지 못했다. 1948년 4월 3일. 섬은 온통 피바다였다. 4.3의 광기 앞에서 도망칠 방법은 하나, 바다를 건너는 것이었다. 그렇게 살기 위해 밀항을 선택한 제주 사람들. 양의헌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제주에 두고 온 세 살 난 딸이 눈에 밟혔지만 잠깐의 이별이라 생각했다. 다시 어린 자식을 가슴에 품을 날이 올 것이라 굳게 믿었다. # 06장 그리운 가족 양의헌이 이주한 곳은 일본 오사카 이쿠노쿠다. 4.3을 피해 떠나온 제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곳이다. 양의헌은 이곳에서 남편을 만나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조총련계 남편의 영향으로 제주는, 더 이상 밟을 수 없는 고향이 되었다. 어린 피붙이를 두고 온 죄책감에 삶은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평생 험난한 파도 위에서 살아온 해녀다. 삶은, 이어져야 했다. ‘살암시민 살아진다’는 제주 어머니들의 말처럼... # 07장 긴 이별 1960년대 북한은 귀국 사업을 시작한다. 북한의 열렬한 환송식에 양의헌의 세 명의 아들도 북송선에 몸을 실었다. 타향살이의 설움과 냉대 속에서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 양의헌은 또 한번 생이별을 겪어야 했다. 그 시절, 일본에는 그녀와 비슷비슷한 사연으로 이산의 아픔을 겪어야 했던, 이름 모를 수많은 가족들이 있었다. # 08장 재회 마침내 만나고 말았다. 반세기를 넘게 가슴에 묻고 살아온 모녀의 극적인 상봉이었다. 어느덧 양의헌은 여든을 훌쩍 넘겼고, 딸도 나이를 먹었다. 왜 이제야 만났을까... 왜 헤어져야 했을까... 그러나,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 모진 운명 앞에서 모녀는 담담히 서로의 삶을 위로하고 달랬다. # 09장 통일의 바다 아침 햇살이 눈부신 어느 봄날, 갯바위 주변이 부산스럽다. 나이든 해녀들의 물질이 한창이다. 꽃다운 나이에 물질을 배워 어느덧 노년이 된 해녀들.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밀린 수다에 물질까지 하느라 바쁘다. 나이가 많은 해녀는 얕은 바다에서 일한다. 깊은 물은 체력적으로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해녀들을 위해 기꺼이 내어준 바다를 가리켜 ‘할망 바당’이라 부른다. 양의헌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제주의 ‘할망 바당’... 아름다운 유년의 추억이 아스라이 스며있는 그, 봄 바다... # 10장 그녀 바다가 되다 일본에서도 자맥질이 한창이다. 양의헌도 바다에 들었다. 보이는 건 그리운 수평선뿐... 자식을 향한 그리움이 깊어질 때면 바다만한 곳이 없었다. 호오이 ... 호오이 ... 호오이 ... 호오이 ... 해녀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질곡 많은 역사의 바람을 껴안으며 시대의 파도를 타고 넘어야 했던 여인들 그 안에서 한 가정을 일구어낸 강인한 여인들 ... 2015년 해녀 양의헌이 눈을 감았다. 꿈에 그리던 고향,,, 제주 바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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