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깊은 곳의 그리움을 불러본다.
제주의 4·3을 마음으로 느끼고,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숨어있는 그리움을 불러보고자 한다.
나는 제주 중산간에 자리한 가시리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했고, 집 안팎의 대소사와
친척 집 제사에 참석하는 것 또한 일상이었다. 가시리 마을에는 한날한시에 돌아가신 분들이 많아서 온 동네가 제사인 날도
있었다. “오늘 시께 많주게”, "밤인디 온 동네 불 켜졍 훤해여" 라며 어른들이 하던 얘기를 들었었고 친구들 사이에서 "너네 집도
시께냐"고 물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천명이라고 얘기하는 50이 되기 전까지 4·3은 아주 오래전에 벌어졌었던 일이라고 생각하고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넘겨버리곤
했었다. 이제 반백살을 넘기고 부모님을 모두 보내고 나서야 지나온 세월이 야속하게도 부모님이 살아온 삶이 너무도 힘들고
가슴아팠다는 것을 직시하게 되었다. 나의 외할아버지와 외증조부께서는 4·3 때 억울하게 희생당하셨다. 어머니께서는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우리에게 외할아버지에 관한 얘기를 한 번도 하지 않으셨고 그 아픔을 가슴에 묻고 가셨다.
나는 우리 가시리마을 사람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희생당하셨는지 알아보고자 '순희 삼촌' 어른들을 찾아뵙고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날의 처참하고 가슴 아픈 실상을 직접 들어보니 그동안 내가 너무 몰라 미안했고, 죄책감이 들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바로 이런 것들을 표현하고 알리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제주 사람들이라면 항상 가슴 깊은 곳 어딘가에 묻고 지내왔던 4·3에 대한 애절한 마음이 있다.
시간이 흘러도 우리가 살아온 삶 속에 예술이 있고, 문화와 전통이 이어져 왔다. 나는 어머니께서 가슴에 묻어두었던 아픈
사연을 머리카락과 물감으로 캔버스에 담아 그리운 어머니와 4·3으로 아픔을 간직하신 그분들께 자그마한
위로를 건네보고자 한다.
제주의 4·3을 마음으로 느끼고,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숨어있는 그리움을 불러보고자 한다.
나는 제주 중산간에 자리한 가시리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했고, 집 안팎의 대소사와
친척 집 제사에 참석하는 것 또한 일상이었다. 가시리 마을에는 한날한시에 돌아가신 분들이 많아서 온 동네가 제사인 날도
있었다. “오늘 시께 많주게”, "밤인디 온 동네 불 켜졍 훤해여" 라며 어른들이 하던 얘기를 들었었고 친구들 사이에서 "너네 집도
시께냐"고 물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천명이라고 얘기하는 50이 되기 전까지 4·3은 아주 오래전에 벌어졌었던 일이라고 생각하고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넘겨버리곤
했었다. 이제 반백살을 넘기고 부모님을 모두 보내고 나서야 지나온 세월이 야속하게도 부모님이 살아온 삶이 너무도 힘들고
가슴아팠다는 것을 직시하게 되었다. 나의 외할아버지와 외증조부께서는 4·3 때 억울하게 희생당하셨다. 어머니께서는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우리에게 외할아버지에 관한 얘기를 한 번도 하지 않으셨고 그 아픔을 가슴에 묻고 가셨다.
나는 우리 가시리마을 사람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희생당하셨는지 알아보고자 '순희 삼촌' 어른들을 찾아뵙고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날의 처참하고 가슴 아픈 실상을 직접 들어보니 그동안 내가 너무 몰라 미안했고, 죄책감이 들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바로 이런 것들을 표현하고 알리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제주 사람들이라면 항상 가슴 깊은 곳 어딘가에 묻고 지내왔던 4·3에 대한 애절한 마음이 있다.
시간이 흘러도 우리가 살아온 삶 속에 예술이 있고, 문화와 전통이 이어져 왔다. 나는 어머니께서 가슴에 묻어두었던 아픈
사연을 머리카락과 물감으로 캔버스에 담아 그리운 어머니와 4·3으로 아픔을 간직하신 그분들께 자그마한
위로를 건네보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