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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살의 시간

두번째 살의 시간

두번째 살의 시간

일자
2025.11.17 ~ 2025.11.30
시간
평일 17:00~21:00, 주말 13:~20:00
장소
포지션 민
문의
010-4211-5738
참여
김승민
  • 주소 (63168)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관덕로6길 17 2층, 포지션 민

어릴 때부터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밤잠을 설치곤 했다. 이는 어린 시절 물에 빠져 죽을뻔했던 기억때문인지, 가족간의 다툼으로 다같이 죽자는 말을 입에 올리던 아버지의 모습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이러한 사건들로 인해 삶이란 다소 허무하게 끝날 수 있는 것임을 일찍이 깨닫게 되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 불안은 여전했다. 나는 캔버스 위에 파괴된 풍경, 해체된 신체, 이름 모를 짐승들의 뼈 등 다양한 종류의 죽음을 그려넣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나의 불안은 어느 순간 개인 차원의 공포를 넘어 시대의 불안정성에 시선이 가기 시작했다. 자연은 붕괴의 조짐을 보였고, 정치와 사회는 반복적으로 파국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시대가 공유하는 죽음의 징후를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며 나의 작업은 생태, 정치, 신화의 차원의 파국으로 확장되었다.

 

파국의 순간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자연스레 죽음 이후에도 살아남는 존재들에게 시선이 옮겨갔다. 삶은 언제나 죽음이 내려앉은 땅 위에서 피어나며, 이는 죽음의 순환은 탄생의 순환이 뗄레야 뗄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죽음은 단절의 지점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는 시간, 변형의 국면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세계가 붕괴의 반복 속에 놓여 있다면, 우리는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죽음 이후의 존재이며 ‘두 번째 살’을 부여받고 살아가는 셈이다.

 

최근 작업에서는 이러한 죽음을 변형으로 바라보는 시선으로 세계를 이해하고자 했다. 나는 생태계의 멸종과 사회적 붕괴가 유사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거대한 종이 어떤 요인에 의해 소멸할 때, 환경에 적응하기 쉬운 종이 새로운 시대의 패권을 잡는 모습은 인간 세계의 권력 이동과 닮아 있었다. 나의 회화 속에서 파국 이후의 세계는 시대의 압력에 의해 회화적으로 변형되거나 다른 종과 혼합된 하이브리드 인물이 등장하는 장면으로 펼쳐진다. 그들은 낯설고 불길해 보이지만, 무너진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불가피하게 적응하려는 생태적 변화의 단계에 놓인 존재들이다. 두 번째 살이란 결국 붕괴하는 시간 속에서 수없이 미세한 죽음을 통과하며, 과거의 시대와 자신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져 타자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육체이다.

 

그렇다면 파국 이후의 존재들은 무엇을 이어받아 살아가는가. 두 번째 살의 존재들은 죽음이 남긴 흔적과 기억을 지우지 않고 신체나 가슴에 품은 채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 잔여는 파괴의 상흔이자, 동시에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최소한의 연결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파국이 생존자들에게 남기는 것, 그리고 살아남은 자가 그 흔적들에게 어떻게 손을 내밀 수 있는지를 묻고있다. 《두 번째 살의 시간》은 그렇게 남겨진 것들로부터 어떻게 관계 맺을지에 대해 탐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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