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화수목순환 - 예미개인전

화수목순환 - 예미개인전

화수목순환 - 예미개인전

일자
2019.10.01 ~ 2019.10.15
시간
11:00-21:00
장소
갤러리 거인의 정원
문의
064-759-5759
  • 주소 (63239)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대원길 58 갤러리 거인의 정원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문화예술재단

협찬 : 사회적 협동조합 컬쳐마루

자연미의 근원에 대한 우주론적 탐색                                   

작가 예미는 근작에서 유형․무형의 이미지들을 선택하여 추상성 강한 화면을 추구함으로써 예전에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식미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가 탐구하는 미의 세계는 우주적 힘의 질서가 성립되기 이전 에너지의 충돌에 의해 야기된 카오스적 양상이거나 태고의 신비로움이 가득한 원시적 서정의 양태, 즉 자연미의 근원에 대한 우주론적 탐색으로 비쳐진다.

, 등은 제주의 자연 속에서 우주를 해석해 내는 예술가적 상상력과 미적 욕망이 잘 드러나 있다.

작가는 캔버스의 평면성을 유지하면서 물성과 행위성을 개념화함으로써 표면에서 풍기는 섬세한 재질감, 색채의 비물질적 성격에 관심을 보이며 드로잉은 물론, 뿌리기와 콜라주 등 현대회화가 이룬 다양한 형식적 가치를 적극 수용한다. 시간의 의미를 내면화하는 물리적 과정으로 도입한 드리핑 기법과 여기에서 파생된 이미지들은 시공간을 해체시킴으로써 일상의 이미지가 원초적 이미지로 환원된다.

예미는 기존의 작품에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정치 ․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드러나는 기이한 현상과 모순적 측면들을 작가적 시각에서 해석하여 제시하곤 했다.

익숙하면서도 낮선 풍경들은 독특한 형태미와 차별화된 색채감각으로 강한 개성을 보이며 우리에게 어필되었던 것이다. 그는 자연과 동식물들을 통하여 다시금 땅의 역사와 우주를 사유하고 사회적 현실에서 부딪히는 딜레마에서 인간 존재의 비정형성을 깨닫는다.

자아의 깊은 속마음이나 스스로가 경험했던 사회적 모순, 인간적인 불완전성, 규정되지 않은 혼란스러운 사회상 등을 나타낸 예미의 그림은 사회적 진실과 인간적 삶, 그리고 자연과 우주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강한 독자성을 보여주고 있다.

우주의 질서와 사회적 삶의 괴리에서 파급되는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작가의 의구심은 여전히 작품의 내용적 모티브로 존재하나 형식적으로는 질료의 탐구와 형태의 실험이라는 동시대적 가치를 면밀하게 추구하고 있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사회성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던 기존의 이야기그림에서 명확한 메시지는 보이지 않는 비구상으로 작업의 양상이 변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물론 사회적 메세지를 담은 작업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개인의 발언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훨씬 용이해진 현대에 예술가의 사회적 발언은 하나의 선택일 뿐입니다. 저는 순간에 불과한 사회현상보다 더 근원적인 물질, 생명, 정신의 탄생에 집중하고 싶었습니다.”

서사적 풍경이나 시의성 있는 주제의 사회적 미술에 천착했던 그가 추상회화로 귀착하였다는 사실은 이전 여러 작업에서 추상성을 근간으로 작업하고 있었다는 것에서 이미 예견된다. 주지하다시피 추상회화란 가시적 형상을 모방해서 재현하는 방식을 벗어나 점·선·면·색채의 순수조형 요소로 구성한 그림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그 어떤 것을 상징하는 기능이 없다면 추상회화는 존재할 당위성이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구상도 이미지의 재현 요소를 통해 이미지를 넘어서는 것을 암시할 때에만 진정한 예술이 될 수 있다. 예미의 회화는 이 지점에 부합한다. 이전의 작품 <사슴꼬리 우주> 부터 최근의 에 이르기 까지 그의 작업에서 형태론적 ․ 본질적으로 추상적 기조를 읽어 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작업 중 드러낸 마티에르의 효과에 따라 두꺼운 물감의 흔적들이 질서 있게 교접되거나 응어리지고 풍화작용의 결과와 같은 시간성을 배태하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각자의 상상력과 안목에 따라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제공한다. 이러한 소통구조는 모더니즘 미술과는 상이한 것으로 기존의 부재와 존재, 원본과 재현, 구상과 추상같은 이분법적인 체계가 아니라 유기체의 형태가 ‘영겁회귀’의 반복을 통해서 새로운 생명성으로 승화된다는 들뢰즈(Gilles Deleuze)의 언급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형상을 염두에 두기보다는 작가의 심상이 만들어낸 형태를 실험하고 여기에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추상성을 통해 구상회화의 형상개념을 해체한다. 형상과 비형상은 대등하게 혹은 종속적으로 존재하면서 서로를 보완하고 드리핑으로 연결된 형태들은 여전히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존재론적 타당성을 웅변하고 있다. 예미는 거시적으로 자연의 형태를 단순화하고 파편화하는 모더니즘의 방법을 계승하면서도 미시적으로는 앵포르멜적인 태도 즉, 감성적 반응이나 기억, 심리적 인상 등을 통해 사물을 해석한다. 대상들이 지닌 구상적 요소와 덧칠하고 뿌리는 격정이 만들어낸 초형상은 작가의 타고난 색채감각에 어우러져 어느덧 형태, 혹은 재현의 요소를 초월한 절대형상으로 거듭나게 된다. 여기에 뿌림과 번짐이라는 자동기술적 표현방법이 지닌 그의 작업 기반은 자연의 속성에 주목하여 그것에 초월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대상의 ‘해체냐 통합이냐’라는 문제의식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방시킨다.

이렇게 환기된 태초(chaos)와 우주(cosmos)는 자연의 수레바퀴라는 궤도 속에서 순환을 거듭하나, 그의 작품 속에서 유형·무형의 형태로 존재하며 형언할 수 없는 가치를 머금은 채 강한 생명성을 띠며 빛을 발하고 있다.   이경모/미술평론가(예술학박사)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