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를 전공했으나, 다양한 재료와 형식을 통해 작품을 제작하였습니다. 다양한 형식을 관통하는 한 가지 공통점은 '구멍 뚫기'입니다. 초기 작품 중 16미터가 넘는 긴 종이에 손의 다양한 이미지를 바늘로 뚫어 표현했습니다. 미술관 천정에서 바닥까지 늘어지는 이 작품은 조용하지만 극렬한 침묵 속으로 안내합니다. 탁구공에 '삶'이라는 글자를 바늘로 뚫고 원형의 탑을 쌓기도 했습니다. '구멍'은 그의 작품의 주제와 연결된 중요한 형식이 되었습니다. 구멍은 이편과 저편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평탄한 어떤 것에 생기는 균열이나 상처, 흠집 등을 상징하였습니다. 작품을 통해 '삶'과 '죽음'이라는 실존적 주제에 대한 관심을 이어나가던 작가는 땅에 떨어진 마른 나뭇잎에 나타난 구멍들(벌레 먹거나 비와 바람과 햇빛에 의해 나뭇잎의 일부가 소실된)을 문득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구멍이라기보다는 그 존재가 점점 비워지는 자연 그 자체의 모습이었고 작가는 그것이 자신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구멍보다 훨씬 더 진정성 있는 모습이라고 여겼습니다. 작가는 구멍 난 잎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한가로이 집 주위를 거닐던 어느 여름날, 싱싱한 콩잎들 사이로 벌레 먹어 구멍이 뚫린 잎들을 보았습니다. 어떤 구멍들은 웃고 있었고, 어떤 구멍들은 울고 있었습니다. 구멍이 나있지 않은 멀쩡한 잎은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거기엔 어떤 희노애락도 없어 보였습니다. 나는 잠시 구멍을 뚫는 내 작업의 방식을 접기로 했습니다. 내가 뚫는 구멍보다 간절하고 더 극렬한 구멍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구멍이 나다 못해 온통 헤져 잎맥만 가느다랗게 남은 잎들, 나는 그 잎에서 부처를 보았고 예수를 보았습니다. 상처도 절실하면 이토록 아름다운 무늬가 되는구나. 그리고 자연스레 그 잎들을 줍기 시작했지요.”
이후 직접 구멍을 뚫어 작품을 만들기보다는 구멍 난 나뭇잎을 주워 그 나뭇잎의 형상을 통해 떠오르는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작가는 나뭇잎을 얻기 위해 늦은 가을이면 한 장소를 3년에 걸쳐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거의 잎맥만 남다시피 한 상수리나뭇잎들은 날개가 되기도 하고, 헤진 콩잎들은 웨딩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이 되기도 합니다. 나뭇잎이나 몸통에서 떨어져 나온 곤충의 날개에 연결하여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습니다. 그 중에는 예술가의 모습,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 등이 있습니다. 김미형작가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자기 자신을 비롯하여 사람들의 삶에 대한 것입니다. 작품의 주재료인 나뭇잎이나 죽은 곤충의 날개로 말미암아 모든 삶의 이야기는 결국 끝이 있다는 사실을 은유하였습니다. 불가피한 미래인 '소멸'을 잊지 않고 살아갈 때 인간이 삶을 조금 더 겸허하고 진실하게 살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작가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제주로 이주한 작가는 겨울 담벼락의 넝쿨들에 매혹되어 ‘넝쿨드로잉’이라는 새로운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치열한 삶의 흔적인 넝쿨의 선들, 그 형태에 주목해 날개와 사람 등 다양한 형상을 담아내고 있습니다.